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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구 교수의 폭로...
+   [맨발의 산행]   |  2009/06/29 11:20  
"서울대 학생들, 채점해보니 모두 F학점"
이준구 교수 충격 폭로, "MB의 사교육 미봉책에 절망감 느껴"
2009-06-29 09:16:03 의견보내기 기사프린트 기사모으기

"이번 학기 ‘재정학’ 학기말시험 채점을 하면서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예년보다 더 어렵게 출제한 것도 아닌데 학생들의 답안이 말 그대로 엉망이었기 때문이다. 0점 아니면 거의 0점에 가까운 답안이 대략 3분의 1 정도 되었고, 모두 정답에 가까운 것을 써낸 학생은 하나도 없었다. 채점을 끝내고 나서 평균점수를 계산하니 30점을 조금 웃도는 수준이었다. 절대평가를 하면 거의 모두 F학점을 받아야 했으나, 내가 상대평가 방식을 선택한 덕분에 간신히 그 비극을 면할 수 있었다."

서울대 경제학부의 이준구 교수가 밝힌 대한민국 교육의 현주소다.

이 교수는 "우리 대학에 들어올 정도라면 그 동안 공부밖에 모르고 살아온 사람일 것이 분명하다. 그런 사람들이 약간의 응용을 요하는 문제를 냈다고 백지에 가까운 답안을 냈다는 것은 아무래도 납득이 가지 않는다. 이들이 그 동안 공부해 온 방식에 무언가 결정적인 문제가 있지 않고서는 이런 결과가 나타날 수 없다"며 "내 느낌으로는 그저 암기한 것을 그대로 토해내는 것만 능할 뿐 도대체 생각이라는 것을 할 줄 모르는 사람들 같다"고 탄식했다.

이 교수는 27일 자신의 블로그에 이같은 글을 올렸다. 우리 사회 최고대학의 충격적 실태를 공개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교수가 이같은 사실을 공개한 것은 이명박 정부가 최근 드라이브를 건 사교육비 절감 대책이 방향을 잘못 잡고 있다는 지적을 하기 위해서였다.

이 교수는 "최근 정부가 교육을 바로 잡겠다며 팔을 걷어붙이고 나왔다. 대통령은 대학입시 제도를 손보아야 한다는 발언을 했고, 정부 일각에서는 사교육을 줄일 획기적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뉴스를 흘린다"며 "정부가 앞으로 어떤 구체적인 대책을 내놓을지는 두고 보아야 할 일이지만, 문제의 핵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더 나아가 "사실 정부가 뒤늦게 사교육을 줄이겠다고 팔 걷고 나서는 것 자체가 약간 우스꽝스럽다"며 "지금까지는 사교육이 늘어날 것이라는 비판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네들 마음대로 교육의 판을 다시 짜는 데 전념해 오던 그들이었기 때문이다. 자사고나 국제중의 설립이 모두 사교육을 폭발적으로 증대시킬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점을 모르기라도 했다는 말인가? 대학입시를 전적으로 대학에 맡기는 것이 사교육을 부추기는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음을 예상하지 못했다는 말인가"라며, 사교육비 폭증의 근원을 현 정부가 제공했음을 지적했다.

그는 청와대가 주도하고 있는 사교육비 절감책과 관련해서도 "내신과목을 축소한다고 해서 달라질 게 아무 것도 없다. 과목 수를 줄여 집중적인 사교육을 하는 방식으로 전환하게 될 뿐, 사교육의 규모 그 자체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을 것"이라며 "또한 10시에 학원 문을 닫게 만드는 것은 변칙, 음성 사교육을 부추기는 결과만 가져올 것이 분명하다"고 단언했다. 그는 이어 "수능시험을 2, 3회 보게 하고 그 중 높은 점수로 대학에 지원하게 만든다는 아이디어도 뜬금없기는 마찬가지"라며 "시험을 여러 번 보게 한다고 느긋한 마음으로 시험을 칠 수 있을까? 한 번 쳐서 좋은 점수 나왔다고 그냥 있을 사람은 만점 맞은 사람밖에 없으리라는 것도 쉽게 점칠 수 있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결론적으로 "과거 권위주의적 정권 시절 과외 금지라는 고단위 처방도 별 효과를 내지 못했는데, 지금 논의하고 있는 대책 정도로 사교육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기 힘들다"며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이 대책들이 몸을 건강하게 만들어 병을 낫게 하는 처방이 아니라 단지 열을 내리려 하는 미봉책의 성격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 교수는 "우리 교육이 직면해 있는 좀 더 본질적 문제는 다른 데 있다. 글 첫머리에서 말한 것처럼, 공부만 많이 한 지적 미숙아를 양산하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라며 "아까운 시간과 노력을 입시 준비에 낭비해 버린 탓에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마비되고 공부를 할 열의도 없어진 사람이 되고 마는 것이 가장 심각한 문제라는 말이다"라며 현재 한국교육의 본질을 명문대에 진학하기 위한 기계적 암기식 교육에서 찾았다.

그는 더 나아가 "우리 경제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교육의 질이 높아져야 한다는 데 흔쾌히 동의한다"면서도 "그러나 교육의 질을 대학 입학 성과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 교육의 핵심은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고 배우느냐에 있다. 이에 관한 논의는 실종되고 사교육 줄이는 미봉책에 대한 논의만 무성한 것이 우리 사회의 비극이다. 바로 이것이 내가 현 정부의 교육정책에 대해 느끼는 절망감의 원천"이라며 현 정부 교육대책에 절망하고 있음을 토로했다.

그는 "참다운 교육이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교육뿐 아니라 사회 전체가 바뀌어야 한다. 사람들이 왜 좋은 대학 들어가는 데 목을 걸고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모두가 좋은 대학들어가는 데만 목을 걸고 있기 때문에 교육이 파행의 길을 가고 사교육이 창궐하는 게 아닌가?"라고 반문한 뒤, "이 구도를 바꾸려면 사회 전반의 분위기가 달라져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 전체가 바뀌기 전에는 참다운 교육이 자리를 잡을 수 없는 것"이란 지적으로 글을 끝맺었다.

이 교수 글은 한국교육에 대해 "인풋(input)은 전세계에서 가장 많으나 아웃풋(output)은 거의 없다"는 선진국가들의 힐난이 결코 과장이 아님을 다시 한번 보여주는 글로, 우리사회 구성원 전체에게 진지한 성찰을 요구하는 질책에 다름 아니다.

다음은 이 교수의 글 전문.

사교육 줄인다고 팔을 걷어붙였으나

병이 깊은 우리 교육

이번 학기 ‘재정학’ 학기말시험 채점을 하면서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예년보다 더 어렵게 출제한 것도 아닌데 학생들의 답안이 말 그대로 엉망이었기 때문이다. 0점 아니면 거의 0점에 가까운 답안이 대략 3분의 1 정도 되었고, 모두 정답에 가까운 것을 써낸 학생은 하나도 없었다. 채점을 끝내고 나서 평균점수를 계산하니 30점을 조금 웃도는 수준이었다. 절대평가를 하면 거의 모두 F학점을 받아야 했으나, 내가 상대평가 방식을 선택한 덕분에 간신히 그 비극을 면할 수 있었다.

내가 보기에 이 과목의 수강생이 특별히 공부를 게을리 해서 그런 것은 결코 아닌 것 같다. 모두들 강의도 열심히 들었을 뿐 아니라, 책이 헐어버릴 정도로 부지런히 읽은 기색도 보인다. 그런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났단 말인가? 사실 학생들의 학력이 조금씩 떨어진다고 느낀 것은 몇 년 전부터였다. 그리고 나만 이렇게 느낀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동료 교수들이 나와 비슷한 느낌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우리 대학에 들어올 정도라면 그 동안 공부밖에 모르고 살아온 사람일 것이 분명하다. 그런 사람들이 약간의 응용을 요하는 문제를 냈다고 백지에 가까운 답안을 냈다는 것은 아무래도 납득이 가지 않는다. 이들이 그 동안 공부해 온 방식에 무언가 결정적인 문제가 있지 않고서는 이런 결과가 나타날 수 없다. 내 느낌으로는 그저 암기한 것을 그대로 토해내는 것만 능할 뿐 도대체 생각이라는 것을 할 줄 모르는 사람들 같다.

이들이 대학에 들어오기 전 어떻게 공부해 왔는지를 생각해 보면 이런 사람이 될 수밖에 없는 사정을 짐작할 수 있다. 그 동안 이들이 ‘선행학습’이란 명목으로 낭비해 온 시간이 과연 얼마나 될까? 미친 듯이 열심히 공부한다 해도 이렇게 낭비적인 방식으로 하면 지적 성장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내신 준비, 수능 준비 역시 지적 성장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낭비적 방식으로 이루어지기는 매 일반이다.

게다가 대학에서 면접 비중을 높인다고 하면 실전을 방불케 하는 모의면접으로 시간을 낭비하고, 논술 비중을 높인다고 하면 모범답안을 앵무새처럼 외우느라 진을 뺀다. 도대체 논술에 어떻게 정답이란 게 있을 수 있을까? 그러나 논술을 채점해 본 사람이라면 학생들이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학생들 면접해 보고 논술 채점해 보면 이 땅의 교육이 얼마나 잘못 되어 있는 것인지 바로 알 수 있다.

우리 어린 세대가 이 병든 교육의 희생자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제대로 놀지도 못하고 공부에만 혼신이 힘을 쏟은 결과가 바로 이런 지적 미숙의 상태라면 사회가 그들에게 엄청난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셈이다. 거의 0점에 가까운 답안지를 내고 자포자기한 상태로 강의실을 떠난 내 재정학 수강생들은 바로 이 병든 교육의 희생자들일 뿐이다. 내가 채점을 하면서 그들에게 분노가 아닌 깊은 연민을 느낀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효과가 의심되는 사교육 대책

최근 정부가 교육을 바로 잡겠다며 팔을 걷어붙이고 나왔다. 대통령은 대학입시 제도를 손보아야 한다는 발언을 했고, 정부 일각에서는 사교육을 줄일 획기적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뉴스를 흘린다. 정부가 앞으로 어떤 구체적인 대책을 내놓을지는 두고 보아야 할 일이지만, 문제의 핵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지금의 방식으로 접근하면 우리 교육의 고질적 병폐를 바로 잡는 것은 고사하고 사교육을 줄이는 것조차 어려울 게 분명하다.

사실 정부가 뒤늦게 사교육을 줄이겠다고 팔 걷고 나서는 것 자체가 약간 우스꽝스럽다. 지금까지는 사교육이 늘어날 것이라는 비판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네들 마음대로 교육의 판을 다시 짜는 데 전념해 오던 그들이었기 때문이다. 자사고나 국제중의 설립이 모두 사교육을 폭발적으로 증대시킬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점을 모르기라도 했다는 말인가? 대학입시를 전적으로 대학에 맡기는 것이 사교육을 부추기는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음을 예상하지 못했다는 말인가?

뒤늦게나마 정부가 사교육 대란의 발생 가능성을 인식한 것이 불행 중 다행일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 정부가 생각하고 있는 대증요법으로는 문제의 근본적 해결이 불가능하다. 예컨대 내신과목을 축소한다고 해서 달라질 게 아무 것도 없다. 과목 수를 줄여 집중적인 사교육을 하는 방식으로 전환하게 될 뿐, 사교육의 규모 그 자체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을 것이다. 또한 10시에 학원 문을 닫게 만드는 것은 변칙, 음성 사교육을 부추기는 결과만 가져올 것이 분명하다.

수능시험을 2, 3회 보게 하고 그 중 높은 점수로 대학에 지원하게 만든다는 아이디어도 뜬금없기는 마찬가지다. 시험을 여러 번 보게 한다고 느긋한 마음으로 시험을 칠 수 있을까? 한 번, 한 번 뼈를 깎는 자세로 시험을 칠 것이 뻔하고, 이것은 학생들에게 엄청난 심리적 압박으로 작용하게 된다. 한 번 쳐서 좋은 점수 나왔다고 그냥 있을 사람은 만점 맞은 사람밖에 없으리라는 것도 쉽게 점칠 수 있는 일이다.

수능시험을 여러 번 보게 만드는 것이 학생들에게 어떤 긍정적 영향을 미치며 사교육을 줄이는 데 어떤 효과를 발휘할지 내 나쁜 머리로는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 조금 미안한 말이지만, 미국에서 그렇게 하니 우리도 그렇게 해보자는 생각에서 나온 아이디어는 아닐까?

그렇다면 이만저만 무책임한 태도가 아니다. 강남(*중국 양쯔강 이남의 땅)의 귤나무를 강북에 옮겨 심으면 탱자나무가 되는 이치를 모르지는 않을 텐데 말이다.

지금 정부가 내놓고 있는 사교육 억제 방안 중 이렇다 할 효과를 내리라고 예상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별 효과를 내지 못 하고 공연히 혼란만 부채질하는 결과를 빚을 가능성이 크다. 과거 권위주의적 정권 시절 과외 금지라는 고단위 처방도 별 효과를 내지 못했는데, 지금 논의하고 있는 대책 정도로 사교육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기 힘들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이 대책들이 몸을 건강하게 만들어 병을 낫게 하는 처방이 아니라 단지 열을 내리려 하는 미봉책의 성격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근본적 재검토 필요한 교육정책

지금 정부가 취하고 있는 태도를 보면, 더러운 물이 나온다고 배수구를 틀어막으려 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배수구를 틀어막으면 잠깐 동안은 더러운 물이 덜 흘러나오는것 같이 보일 테지만, 얼마 후 다른 데서 넘쳐흐를 것이 뻔하다. 중요한 것은 더러운 물의 발생 그 자체를 막는 일이며, 그렇게 하지 못하면 배수구를 아무리 막아 보아야 소용이 없다. 더러운 물이 차올라 다른 데서 넘쳐흐르면 오히려 피해가 더 커질 수 있다.

더러운 물의 발생 그 자체를 막아야 한다는 것은 사교육에 대한 수요 그 자체를 통제해야 한다는 뜻이다. 물론 대학입시가 어떤 방식으로 치러지느냐에 따라 사교육 수요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본고사에 대해 극도로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하고, 경시대회 입상자에 대한 우대를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대학입시를 손보는 것만으로는 사교육 수요를 크게 줄일 수 없다. 완전한 추첨방식을 채택하지 않는 한 사교육을 통해 합격의 확률을 높여 보려는 유혹은 계속 존재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입학사정관제의 도입에 큰 기대를 거는 듯하다. 솔직히 말해 나도 본고사, 심층면접, 논술보다는 더 나은 제도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과도한 기대는 금물이다. 본격적인 시행이 시작되자마자 공정성에 대한 시비가 불붙을 뿐 아니라, 제도의 허점을 파고들려는 집요한 공작이 난무할 것을 쉽게 예상할 수 있다. 미국에서 이 제도가 그런대로 잘 운영되고 있다 해서 우리나라에서도 잘 운영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순진하기 짝이 없는 발상이다.

어떤 대학입시제도를 채택하든 사교육 수요를 완전히 없앨 수 없다면, 차선책은 단순한 대학입시를 추구하는 것이라는 게 내 믿음이다. 대학입시가 복잡하면 복잡할수록 사교육 수요가 늘어나게끔 되어 있다. 여러 가지 요소를 다양하게 고려하는 입학사정관제는 지역균형 선발이나 영재 선발 같은 제한적인 목적으로만 활용하고, 나머지는 내신과 수능 성적만 고려해 선발하는 단순한 체제로 복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대학입시뿐 아니라 고교 교육의 기본골격 역시 사교육 수요와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다. 정부는 평준화를 해체하면 사교육 수요가 줄어들리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나는 이것이 대단한 착각이라고 본다. 특목고, 자사고가 아무리 교육을 충실하게 시킨다 해도 사교육 수요를 전혀 줄일 수 없다. 사교육의 유일한 목적은 입시에서 남보다 더 우월한 위치를 차지하는 데 있어, 학교에서 아무리 잘 가르친다 해도 그 수요는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공연히 말싸움 벌일 필요 없이 특목고에 다니는 학생에게 물어보면 간단하게 답을 얻을 수 있는 문제다.

평준화의 기본구도를 해체하려는 정부의 시도는 오히려 사교육 수요의 폭발적 증가를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 대입 관련 사교육 수요가 전혀 줄지 않은 상황에서 고입 관련 사교육 수요가 엄청나게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자사고, 특목고의 입시를 어떤 방향으로 바꾸든 이것은 필연적으로 예견되는 결과다. 몇 개의 특목고에 들어가기 위한 사교육 수요에 비해 백개나 되는 자사고에 들어가기 위한 사교육 수요가 몇 배나 더 클 것임은 두말할 필요조차 없다.

결론적으로 말해 대학입시제도를 손보든, 학원에 통제를 가하든, 고교 평준화의 기본골격을 깨든 사교육 수요가 줄어들 가능성은 0에 가깝다. 사교육 수요 억제에 관한 한 현 정부가 그 동안 추진해 온 정책을 포기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장 좋은 대안이다. 사교육 수요를 한껏 늘려놓은 다음 뒤늦게 줄이겠다고 미봉책을 쓴들 이렇다 할 효과가 있을 리 만무하다. 지금까지 추진해 왔던 교육정책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하지 않는 한 사교육 수요 억제는 실현 불가능한 과제다.

참다운 교육이 자리 잡아야

그런데 사교육을 줄이는 것이 중요한 과제이기는 하지만, 우리 교육이 직면해 있는 좀 더 본질적 문제는 다른 데 있다. 글 첫머리에서 말한 것처럼, 공부만 많이 한 지적 미숙아를 양산하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아까운 시간과 노력을 입시 준비에 낭비해 버린 탓에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마비되고 공부를 할 열의도 없어진 사람이 되고 마는 것이 가장 심각한 문제라는 말이다. 뿐만 아니라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준비조차 제대로 해주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우리 교육을 되살릴 길이 없다.

그러나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교육정책에는 이 문제에 관한 그 어떤 비전도 발견할 수 없다. 자사고를 많이 만들어 공교육 살린다고 하지만, 대입 준비 잘 시켜준다는 것은 참다운 교육과 거리가 멀다. 지금도 일부 특목고에서 입시 준비를 위해 교육과정을 변칙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문제되고 있는 실정이다. 현실적으로 보아 새로 만들어진 자사고 역시 입시 준비기관 이상의 의미를 갖기 힘들 것이다.

그 동안 정부가 교육에 대해 한 말들 중 이 문제에 대한 심각한 고민이 담겨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학교와 교사를 평가하고 그 결과를 공개해 경쟁을 유도하면 교육의 질이 높아질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만을 읽을 수 있을 뿐이다. 학교와 교사의 평가가 참다운 교육보다는 입시 준비와 더 밀접한 관련을 가질 것이라는 점은 구태여 말할 필요조차 없다. 좋은 대학 많이 보내는 학교와 교사가 높은 평가를 받는 풍토에서 참다운 교육은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다.

우리 경제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교육의 질이 높아져야 한다는 데 흔쾌히 동의한다. 그러나 교육의 질을 대학 입학 성과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 교육의 핵심은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고 배우느냐에 있다. 이에 관한 논의는 실종되고 사교육 줄이는 미봉책에 대한 논의만 무성한 것이 우리 사회의 비극이다. 바로 이것이 내가 현 정부의 교육정책에 대해 느끼는 절망감의 원천이다.

참다운 교육이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교육뿐 아니라 사회 전체가 바뀌어야 한다. 사람들이 왜 좋은 대학 들어가는 데 목을 걸고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모두가 좋은 대학들어가는 데만 목을 걸고 있기 때문에 교육이 파행의 길을 가고 사교육이 창궐하는 게 아닌가? 이 구도를 바꾸려면 사회 전반의 분위기가 달라져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 전체가 바뀌기 전에는 참다운 교육이 자리를 잡을 수 없는 것이다.

사회 전체를 포괄하는 넓은 시각에서 보아야 우리 교육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사교육 수요 억제라는 지극히 좁은 시야에서 교육문제에 접근하고 있다. 곧 판명이 날 테지만, 사교육 억제를 위한 미봉책은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또한 그런 미봉책이 우리 교육을 살리는 데 그 어떤 도움을 주지 못할 것도 분명하다.

현실적으로 사교육을 완전히 없애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사교육이 우리 교육을 병들게 하고 가정을 피폐하게 만들지 못하도록 통제하는 것이 현실적인 목표가 될 수밖에 없다. 나는 참다운 교육이 자리를 잡기 시작하면서 사교육의 광풍도 서서히 그 위력을 잃어 가리라고 믿는다. 이는 몸이 건강해지면서 자연스럽게 열이 내리는 것과 비슷한 이치라고 말할 수 있다. 열을 내리려고 부산을 떨지 말고 몸을 건강하게 만드는 데 힘써야 하는 것처럼, 어떻게 하면 참다운 교육이 자리 잡게 만들 수 있는지에 좀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마땅한 일이다.

김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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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는 두 차례 사상 혁명이 일어났다?
+   [주대환의 생각]   |  2009/06/11 12:47  
독일은 후진국이었다.
뉴턴과 다윈은 모두 영국 사람이었다.
과학은 영국에서 시작된 것이다.
산업혁명도 영국에서 일어났다.
후진국 독일은 영국의 영향을 받아들였다.

후진국 독일에서 사상 혁명이 두 차례 일어났다.
한 차례는 칸트의 철학이었다.
칸트는 "물 자체를 인식할 수 없다"고 하였다.
철학에서 상대주의를 내세운 것이다.
영국의 경험론을 수입한 것이다.

다음으로 베른슈타인의 정치학이 있다.
베른슈타인 역시 마찬가지로
영국의 영향을 받아들여 사회주의 정치학을 일신했다.
페이비안 사회주의를 받아들인 것이다.
촌놈이 영국 망명 생활 동안 깨친 것이다.

물론 칸트나 베른슈타인이나 모두
자기 나라 전통에다 영국적인 요소를 가미하였다.
그런데 그 근본은 경험론이다.
그리고 그 실천적 귀결로서 실용주의다.
종교와 정치는 비로소 완전히 분리되었다.
 
 
     베른슈타인, 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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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후에는 무엇이 남을까?
+   [맨발의 산행]   |  2009/06/09 22:31  
오늘은 아내의 51번째 생일이다.
한국 여성의 평균 수명은 80세를 넘어서고 있으니,
아내는 앞으로 별일이 없으면 30년을 살 것이다.

남성의 수명이 훨씬 짧고 부부 간에 나이 차이도 있어
보통 한국 여성들은 10년 이상을 혼자 산다.
노인 인구 중에는 할머니들이 훨씬 많다.

나는 아내에세 끝까지 책임지기로 하였다.
그렇다면 나도 앞으로 30년을 살아야 한다.
평균 수명보다 10년 정도 더 살아야 한다.

그래서 운동도 열심히 하고 건강에 신경을 쓴다.
그리고 앞으로 30년 후의 우리나라를 전망한다.
모든 문제를 30년 후를 바라보면서 생각한다.

지난 30년을 돌아보며 앞으로 30년을 바라본다.
지난 30년 동안 매우 큰 변화가 있었으니,
앞으로 30년 동안에도 매우 큰 변화가 있을 것이다.

지금은 우리나라에 사회민주주의가 사상으로서도
정치세력으로서도 미약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30년 후에는 사회민주주의가 꽃필 지도 모른다.

보편적 복지국가도 이루어질 지 모른다.
가장 중요한 물질적 조건이 갖추어졌으니...
아마 우여곡절을 겪더라도 이루어질 것이다.

아니 스웨덴보다 더 살기 좋은 나라가 되지 말란 법이 없다.
30년 전에는 아마 스웨덴의 철강, 조선 산업이 우리나라보다
앞서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크게 바뀌지 않았는가?

나는 지난 30년을 되돌아보면서 우리나라의 미래를 낙관한다.
1979년은 부마항쟁이 있었고, 박정희가 사거하고,
그리고 내가 나의 아내를 만나 결혼을 약속한 해다.

다음해 봄, 이른바 '서울의 봄'에 우리는 결혼하였다.
그리고 벌써 29년이라는 오랜 세월을 함께 살았다.
3년 후가 아니라 30년 후에도 남을 것들이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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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새벽, 그는 무슨 책을 읽고 있었을까?
+   [맨발의 산행]   |  2009/06/04 00:27  


 

지난 일요일 밀짚모자를 쓰고 맨발산행을 나갔다. 아버지는 박정희의 밀짚모자를 떠올리고 아들은 노무현의 밀짚모자를 떠올리는 듯했다. 아니 나 혼자 두 사람이 썼던 밀짚모자를 떠올렸는지도 모른다. 산에서 만난 아주머니가 묻는다. "발 안 아프세요?" "예, 아픕니다." 그녀는 내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조심스레 되묻는다. "어디 편찮으셔서 맨발로 등산하세요?" 암수술이라도 받은 사람인가 하여 묻는 것이다.


나는 대답했다. "예, 마음이 좀 아픕니다." 인정많고 호기심 많은 아주머니는 왜 마음이 아픈가를 묻고 싶지만 참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덧붙였다. "며칠 전에 이십여년 짝사랑하던 사람이 데이트도 한 번 안 해주고 먼저 저 세상 가버렸어요." 그렇다.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그 사람은 가버리고 말았다. 실망과 원망, 그리고 뒤엉킨 온갖 상념에서 벗어나려고, 가학과 자학의 본능적 몸짓으로 맨발로 산길을 걸었다.


지난 20여 년, 그 사람의 많은 행동들에 대해 찬성은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해는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마지막 그의 행동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삼류 정치평론가가 보는 상황은 그가 아니라 그의 적들이 난처한 지경에 빠져 있었다. 밑바닥 국민정서는 이미 "이명박이가 너무 심하다!"는 쪽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물론 그 사람은 나의 이런 속된 합리와 타산을 넘어서, 생사의 경계를 너머 멀리 보았다.  


나는 왜 그에게 실망하고, 그를 원망하는가? 


이미 이승을 떠난, 그리고 정치를 떠나 종교의 영역으로 올라간 그에게 할 말은 아니다. 그러나 처음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그 정도의 치욕과 외로움도 이기지 못한 그가 솔직히 실망스러웠다. 그래서 생각해보니 선거에 나가서 여러 번 낙선하였지만 패가망신하여 영혼을 팔아서라도 자식의 학비를 대야겠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을 것 같았다. 대통령이 되어본 적이 없는 내 입장에서 보면 그렇다는 이야기다.


그에게 기대를 걸기 시작한 것은 1987년부터였다. 나는 선배들 중에서 김근태보다 장기표에게, 장기표보다 이부영에게, 이부영보다 노무현에게 더 큰 기대를 걸었다. 운동권 핵심으로부터 거리가 먼 사람에게, 운동권 사투리와 사고방식에 덜 절었던 사람, 중심보다는 주변에 있는, 대중의 정서에 더 가까운 사람에게 기대를 걸었다는 이야기다. 잘 알지 못하는 분들의 인격과 능력에 대한 건방진 판단은 아니었다.


1987년, 그는 비판적 지지론의 대표적 이론가 이해찬을 상대로 논쟁을 하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마 그는 김근태, 이해찬 등 당시 '운동권' 주류의, 정파적으로 왜곡된 논리를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학생운동에서 DJ 지지를 지시하는 대남 방송을 듣는 '주사파'가 만만찮은 세력을 형성하였으니 민주화세력 가운데 이른바 '현실정치세력' 이외의 '운동권' 가운데 태반이 이른바 '비판적 지지파'였다.


그는 부산 촌놈이자, '운동권'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주변적인 멤버의 소박한 사고로 독자 정치세력화 논리에 지지를 보냈다고 들었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기대를 갖기 시작했다. 물론 그는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스카웃되어 국회의원이 되었는데 이 또한 운동권 핵심 멤버라면 하기 힘든 행동이었다. 그는 곧 청문회 스타가 되었다. 그 당시 나는 간절하게 바라고, 여러 사람에게 나의 바램을 말하기도 하였다. 


"아, 그가 진보정당에 합류해준다면 얼마나 큰 힘이 될 것인가!"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고, 나는 크게 실망했다. 세월은 빨리도 흘러 우여곡절 끝에 이제 그가 퇴임한 대통령, 국가 원로, 청문회 스타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그가 다시 한번 진보에 힘을 실어주기를 기대했다. 본인도 퇴임 직전에 자기는 "퇴임 후에는 진보정당을 돕겠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나는 또 인내하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직 젊은 그가, 부지런한 독서가인 그가 머지 않아 사회민주주의자로 진화할 것을 굳게 믿었다. 그리고 그는 분명히 이 나라에서 지독하게도 외로운 사회민주주의자들에게 큰 힘이 될 것이라 믿었다. 그가 만약 사회민주주의자로 커밍아웃을 한다면 나는 그를 우리들이 만드는 '사회민주주의연대'의 고문으로 모실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는 다시 나를 실망시키고야 말았다.


그가 훌쩍 떠났다. 그는 자유민주주의자로서 살다 갔다. 굳이 말하면 자유민주주의자를 넘어서서 사회민주주의자로 진화하는 도중에 갔다. 가까운 장래 국가 원로로서 그가 사회민주주의자로 커밍아웃을 하였다면, 민주화세력과 산업화세력이라는 두 세력의 대립구도를 벗어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새로운 세상이 열리고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을 텐데, 그는 그 대립구도를 벗어나지 못하고 갔다. 오호 통재라!


그날 새벽, 그는 무슨 책을 읽고 있었을까?


맨발로 걸으면서 그를 생각하다보니 궁금해졌다. 잠을 이루지 못한 그날 새벽, 그 사람은 무슨 책을 읽고 있었을까?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그는 무슨 일을 하고 싶었을까? 그는 남은 인생, 무슨 꿈을 꾸면서 살고 싶었을까? 그는 제레미 리프킨의 책 <<유러피언 드림>>을 읽고 있었다고 한다. '진보주의'를 연구하고 있었다. 전 홍보기획비서관 양정철과 전 청와대 대변인 윤태영이 전하는 이야기다.


여기서 '진보주의'는 미국식 사회민주주의다. 유럽의 사회민주주의가 대서양을 건너면서 변한, 미국의 압도적인 개인주의 사회 풍토에 적응하여 뿌리내린 사회민주주의다. 그는 지난해 말부터 진보주의 연구에 천착하였다고 하니 경제 위기와 오바마 당선으로 미국에서 불어오는 진보의 바람을 다른 지식인들과 마찬가지로 그도 함께 맞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과연 폴 크루그먼의 <<미래를 말하다>>도 읽었다고 한다.


양정철 전 비서관이 비공개 연구카페에 실린 글 여러 편을 공개하였다. 그의 내면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사료가 아닐 수 없다. 4월 13일자 글에서 그는 "한국에도 진보주의의 역사가 있었는가?"를 묻고,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는 진보의 정권이었는가?"를 묻고 있다. 자신의 집권 시기를 '진보주의'라는 기준으로 돌아보려고 한 것 같다. 그 동안 빈부격차가 더 벌어졌다는 사실을 무겁게 받아들였을 것 같다.


4월 13일, 그는 다른 글에서 "세계는 진보의 시대로 가는가?"를 묻기도 했다. 또 3월 9일에는 올린 글에서는, "총장 직선제를 채택했던 대학교 중에서 아직까지 총장 직선제를 하고 있는 학교는 얼마 남지 않았"고 "교수들도 선거 때 일어나는 잡음과 후유증 때문에 직선제를 탐탁지 않게 생각"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런 사실을 가지고 민주주의 역량이 부족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라고 조심스레 묻고 있다.


이 질문에 대한 응답으로 '민주주의의 한계'라는 화두가 제기되어야 하는 건 아닌가? 즉 민주주의는 아테네 시절부터 중우정치, 금권정치, 선동정치라는 어두운 면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 그래서 민주주의는 항상 선거로 뽑힌 엘리트들의 깊이 있는 토론이라는 공화주의적 요소, 또는 선진국 정치에서처럼 지식인이 이끄는 정당이라는 현대의 군주, 즉 철인정치적 요소에 의해 보완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사회민주주의와 자유민주주의, 두 가지 정치철학에 따라 무리지은 지식인 집단들이 정당을 만들어서 대중의 선택과 판단, 위임에 의해 정치권력을 행사하는 현대민주주의 정당정치는 단지 민주주의라는 요소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럴 때, 문제의 핵심은 국민의 생각을 바꾸는 데 있지 않다. 그는 올해 초 연구를 제안하면서 "결국 세상을 바꾸자면 국민의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라고 썼다고 한다.


"민주주의든 진보든 국민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만큼만 가는 것 같습니다."라는 그의 말은 굳이 말하면 틀렸다. 국민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과 지식인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모두 자기 발등을 쳐다보며 열심히 걸을 때 멀리 지평선을 바라보는 지식인의 역할은 다른 것이다. 오히려 우리나라 상황에서는 지식인과 그들의 집단으로서 정당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만큼 간다고 말할 수도 있다.


대학진학율 85%의 나라에서 지식인, 정치인과 대화와 소통이 안 되는 국민, '미디어를 통해서 생각을 바꾸어야 할 국민'을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내가 간혹 책을 사서 보내드린다는 노혜경 전 노사모 대표에게 조원희 교수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만든 <<한국사회와 좌파의 재정립>>과 스톤이라는 미국 언론인이 쓴 <<소크라테스의 비밀>>을 사서 보내드리라고 부탁한 것은, 우연이지만 틀리지 않았다.


왜 그토록 그 사람을 다급하게 몰아부쳤는지, 이명박 정권은 무엇에 쫓겼는가? 여유를 주어야 독서도 하고 사색도 하고 반성도 할 것 아닌가? 들리는 이야기로는 계속되는 촛불시위에 굴복하여 대국민 사과를 한 이명박 대통령이 저 많은 초는 무슨 돈으로 샀을까를 생각하다가(우리나라 국민들을 50년 전의 가난한 국민들로 착각하였는지), 자금의 출처를 캐라고 지시하여 태광실업 세무조사를 시작했다고 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촛불 시위를 민주화세력이나 '노무현 잔당'의 배후 조종에 의한 것으로 오인하였다는 이야기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착각이고, 오해이며, 콤플렉스다. 실상 촛불시위는 민주화운동을 전혀 알지 못하는 여중고생들이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민주화세력은 머리를 숙이고 그 자리에 조심스레 끼어든 것이다. 이 너무 빨리 변하는 한국 사회에서 우리 모두 시대착오적이다. 그것이 비극의 뿌리다.


한국의 지식인, 우리 모두 시대착오적이다.


그는 세계사의 시계를 보고 있었다. 그는 "한국은 지금 몇 시인가?"를 물었다. 세계사의 시계로 본 한국의 시각을 물었던 것이다. 그는 더 멀리 내다보고 싶었다. 그의 마지막 연구 메모는 5월 15일의 "수소 경제"와 관련한 자료를 찾아보자는 제안이었다. 그는 분명 민주화세력과 산업화세력이라는 대립구도를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은 그를 민주화세력과 산업화세력의 대립구도에 가두어버렸다.


그 감옥 속에서 그는 "시간과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책을 읽었다고 윤태영은 전한다. "내가 글도 안쓰고 궁리도 안하면 자네들조차 볼 일이 없어져서 노후가 얼마나 외로워지겠나? 이것도 다 살기 위한 몸부림이다. 이 글이 성공하지 못하면 자네들과도 인연을 접을 수밖에 없다. 이 일이 없으면 나를 찾아올 친구가 누가 있겠는가?"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다운 솔직한 토로이고 갇힌 사람의 심정이 절박하다.


결국 그 감옥을 벗어나지 못하고, 그는 민주화세력의 순교자가 되었다. 그는 산업화세력의 순교자인 박정희에 견줄만한 신화적 존재가 되었다. 그의 후광을 배경으로 박근혜만한 영향력을 가진 정치가가 나올 지도 모른다. 그리 되면 한국정치는 오랫동안 그 대립구도에서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고 걱정한다. 여기서도 문제는 언제든지 새로운 대립구도가 주어지면 과거의 대립구도를 잊어버리는 국민이 아니다. 


이제 나는 밀짚모자는 쓰지 않으련다. 박정희도 노무현도 잊고 싶다. 올해는 부마항쟁 30주년이다. 지난 30년 동안을 돌아보면, 앞으로 30년 동안 어떤 일이 벌어질 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스웨덴 보다 더 살기좋은 나라가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그런데 하늘처럼 크고 복잡하며 물처럼 흘러가는 마음을 가진 국민들은 여러 구도를 동시에 품지만, 단순한 지식인들이야말로 문제다. 지식인들이 구도를 벗어나야 한다.


노무현을 순교자의 반열에 올려준 것은 이명박이다. 이명박 정부는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려고 하지만 이를 국민들이 거부한다는 것은 거대한 추모 행렬을 통해서 분명하게 표현되었다. 정부가 여기에 대해서 구질구질한 이의를 단다면 이명박 정부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이 불행해질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무리하게 민주주의와 평화적 남북 관계의 성과를 후퇴시키려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진보에 힘을 보태겠다는 노무현의 약속은 누가 이행할 것인가? 나는 이해찬 전 국무총리가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도 국가 원로의 한 사람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읽던 리프킨의 책을 물러받아야 할 사람은 이해찬이다. 이해찬이 이제는 '아메리칸 드림'이 아니라 '유러피언 드림'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야 한다. 나는 이해찬의 사회민주주의자로의 개종을 기다리면서, 박해와 조롱과 외로움을 인내할 것이다.

 

나는 왜 오해를 받아가면서 굳이 '노동당 노선'의 포기를 선언하였는가? 내가 영국노동당, 호주노동당 같은 노동당을 만들어서 한국 정치를 뒤집어 엎어보자는 '노동당 노선'을 포기한 것은 1987년부터의 독자적 정치세력화 노선을 포기한 것이다. 그래서 '비판적 지지 노선'의 반성의 화답을 기다리는 것이다. 비판적 지지파와 독자정당파의 오랜 갈등을 정리하고 벽을 허물어 진보의 새로운 길을 함께 열자는 것이다.


나는 애매한 정치연합이 아니라 미국 민주당과 같은 '자유-노동 연합' 정당을 제안하였다. 각자가 자기의 이념적 순수성을 지키되 정치는 현실적으로 하자는 것이다. 이는 어디까지나 자기들은 원래 진보세력인데 아직은 '민족민주운동'을 할 때라 '비판적 지지'를 한다던 사람들이 이제는 '사회민주주의운동'을 할 것으로 믿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제안이다. 물론 나의 일방적 짝사랑은 다시 실망으로 끝날지 모르겠다. 


2009년 6월 2일자 <한겨레>에서 박명림 교수는 '자유-노동 연합'이 노동 진영의 편협함으로 인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시사하였지만, 정당을 달리 하는 한 서로의 양보할 수 없는 입장이 있다. 진보적 정치학자들은 이제 미국 민주당과 같은 '자유-노동 연합'의 단일 야당을 전망해주기 바란다. 그런 정치 전략을 전제한다면 사회민주주의 세력은 이제 현실 정치적 제약이 없이 오히려 넓게 세력을 만들 수 있다.


이제 미국이 아니라 유럽으로 눈을 돌리자!


200년 전부터 유럽의 하층민들은 대서양을 건너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그들은 기회의 땅 신대륙에서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하였고, 열심히 노력하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이룰 수 있는 조국을 사랑하고 자랑하였다. 그러나 이제 '아메리칸 드림'은 더이상 지속될 수 없으며 '유러피안 드림'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것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생애 마지막에 읽었던 리프킨의 저작 <<유러피언 드림>>의 논지다.


<<유러피언 드림>>이 말하는 메시지는 바로 사회민주주의자들이 말하고 싶은 것이다. 이제 눈을 유럽으로 돌리자. 미국식 신자유주의 경제 질서, 부자와 기업의 감세, 기업과 금융에 대한 자유 방임 등 사회경제정책은 파탄이 났다. 미국식 라이프 스타일은 미국에서도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다. 미국식 복지제도, 미국식 의료제도, 미국식 교육제도는 더 이상 미국에서도 작동되지 않는다. '미국예외주의'는 끝났다.


유럽인이 대서양을 건너 미국인이 되었듯이, 조선인은 식민지배와 전쟁을 살아남아 한국인이 되었다. 그리고 아메리칸 드림을 닮은 코리안 드림을 성취해왔다. 그러나 이제는 유럽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는 것이 널리 공감을 얻고 있는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주장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여전히 코리안 드림의 꿈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리프킨이 말하는 유러피언 드림을 만난 코리안 드림만이 지속가능하다.

 


 
 
     노무현, 민주화세력 밀짚모자, 사회민주주의, 산업화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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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05 0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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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는 두 종류가 있다
+   [맨발의 산행]   |  2009/05/31 21:10  
어떤 음식점에 "樂山樂水"라는 글씨가 있었다.
그래서 아들에게 농담으로 이렇게 말했다. 
저 글귀 읽어보라, 혹시 "락산락수"아니냐?

"仁者는 樂山하고 智者는 樂水한다"고 했는데...
너희 어머니는 물을 좋아하니 지혜로운 사람이고,
나는 산을 좋아하니 어진 사람이 아니겠는가?

아들이 웃었다. 또 아비가 어미를 갖고 놀려나,
아니면 중늙은이들의 자화자찬이 시작되었는가,
대충 들어주고 적당히 맞장구쳐서 넘어가려 한다.

물론 농담일뿐이고 사실도 아니고 논리적으로도
틀린 말이다. 모든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 어질거나
모든 물을 좋아하는 사람이 지혜롭지는 않다.

그러나 사람에는 두 종류가 있다는 말은 옳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과 물을 좋아하는 사람...
어질고 덕있는 사람과 지혜롭고 재주있는 사람.

아니 사람을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는 건 맞다.
사람들은 대체로 산도 좋아하고 물도 좋아한다.
그럼에도 어느 편인가를 고르라면 고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사회주의자(좌파)로 태어나는 사람과
자유주의자(우파)로 태어난 사람이 있는 것 같다.
유전인자는 발현되지 않고 격세유전 되기도 한다.

거의 완전히 자유로운 선진국들의 정치를 보라.
묘하게 좌파와 우파가 균형을 이루고 있지 않은가?
이건 생물학적, 인류학적인 이유를 가진 현상이다.

그래서 이 세상은 균형을 잡고 사회는 굴러간다.
그런데 자기는 어느 편도 아니라는사람들이 많다.
산도 좋아하지 않고 물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거야말로 그리 좋은 일이 아니고 이상한 일이다.
청군도 백군도 아니면 운동회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말이 아닌가? 그러려면 아예 학교를 오지 말든지...

 
 
     우파, 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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